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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etoilesdhiver)- 영원한 밤의 강

우주에는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다. 율리안 민츠는 창 밖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이네센으로 귀환하는 길이었다. 깊은 피로 탓에 별들이 희붐하게 보였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허탈감과 기묘한 충족감이 온몸을 휩쌌다.

 

열아홉의 소년은 이미 거대한 영묘靈墓의 주인이었다. 이 배의 탑승객은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다. 일 년간 우주를 떠돌던 양부도, 그를 따르던 스승도 이곳에 말없이 몸을 눕히고 있다. 차가운 유해는 그들을 밀어냈던 땅에 죽어서야 돌아갈 것이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으며 율리안은 하이네센에 살아 있는 양 웬리가 쉴 곳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은 제독만이 그곳에서 온전히 환영받을 수 있었다. 그가 행성을 도망쳐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그랬다.

 

이것은 양 웬리의 마지막 성간 항해가 될 것이다.

 

그의 눈에는 대기의 푸름보다 칠흑같은 어둠이 익숙하리라. 그가 평생을 살아온 우주의 공동이 그러하며, 그가 영원히 잠들게 될 땅 아래가 그러하듯이. 율리안 민츠는 상속자로서 장례 행렬을 이끌고 고인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귀환하고 있었다. 실로 긴 노정이었다.

 

*

 

죽은 원수의 마지막 여로에 함께한 이들은 이 년 전의 반의 반수도 채 되지 않았다. 하이네센으로 향하는 수 일 내내 율리안은 열을 내며 앓아야 했다. 몇 안 되는 가까운 어른들과 카테로제가 번갈아 찾아들었으나 몸이 으슬으슬한 것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른' 중 한 명인 더스티 아텐보로는 오랜 긴장이 풀린 때문이라며 향신료를 넣어 펄펄 끓인 포도주를 한 잔 주고 갔다. 소년은 침실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코끝에 알코올의 김을 쐬며 둥근 창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

 

등 뒤에서 인공의 고향별이 영원히 멀어져간다.

 

*

 

밤이었다. 카론의 나룻배처럼 배는 어둠을 건너 항구에 도달했다. 함선이 한 척뿐인 탓에 이전과 같은 장례 대형은 짤 수가 없다. 다만 병원선과 마찬가지로 희고 붉은 불빛을 좌우로 쏘아보내, 이 배에 공격 의사가 없으며, 무기 역시 없음을 나타낸다. 어둠을 뚫고 멀리멀리 퍼져나간 빛은 우주항의 안내판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하선 준비를 하던 율리안은 오래 전 양부가 보여 준 먼 옛날 동방의 역사책을 떠올리며, 그것이 장지로 향하는 상여 곁에 벌여세워 둔 만장輓章 같다고 생각했다.

 

*

 

율리안 민츠는 이제 눈이 오는 전몰자 묘역에 서 있다. 사람이 만든 별인 이제르론에서 인공 강우가 내리는 일은 있어도 눈이 오는 일은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눈이 사고를 부를 수 있고 치우기가 불편하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발이 푹푹 파묻힐 정도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사람들 중 우산을 쓴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얘진 어깨를 하고 소년은 오와 열을 맞추어 늘어선 묘비를 바라본다. 비석 위에 이름은 많으나 그 이름들은 죽은 이의 수보다 터무니없이 적다. 파국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화려하고 거대해져 산 자를 압도하는 표석. 동맹 말, 죽은 장성은 군신軍神으로 거듭나 마침내는 숭배의 대상이 되곤 했다. 율리안은 그의 예민했던 보호자처럼 권력을 대놓고 혐오하지는 않았지만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이 행성을 차지했던 제국군이 반도들의 거대한 무덤을 무신경하게 방치해놓은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럼에도 양 웬리의 유해는 구 동맹의 장성 묘역에 묻힌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욕심이었다.

 

"율리안."

 

묘혈을 내려다보는 소년에게 누군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시종 움직이지 않던 그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율리안 민츠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보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동맹이라는 죽어가는 항성은 이제르론의 전성기를 최후의 빛으로 삼았다. 그 빛의 기억은 살아남은 자들의 내밀한 언어 속에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광과 눈물의 날들에 대해 속삭일 수 있었던 이들이 사라진 뒤에는 모든 것이 역사 안에 납작하게 눌려 박제될 것이다. 책 안에 끼워졌다 발견되는 마른 꽃잎들처럼.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랫소리는 얼마나 무신경하고 두려울 것인가?

 

율리안 민츠는 그가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느린 장송곡 속에서 관 위에 흙과 눈보라가 어지러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의 양부의 여정은 서른네 해 만에 이곳에서 끝난다. 생전 부초처럼 밤을 떠돌던 이의 마지막 거처가 바로 이곳이었다.

은하영웅전설 2020 여행 합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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