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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ynowh)- 고향별 여행자

 알렉스 카젤느가 재채기를 하면 이제르론 전체가 감기에 걸린다 - 해묵은 금언

 

 이제르론 만큼 지구를 닮은 행성은 없다. 하지만 이제르론 만큼 지구와 동떨어진 행성도 없다. 왜냐하면 이 인공행성의 흙, 물, 불, 바람 어느 하나도 지구의 그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제어되는 대기 시스템이 변덕스러운 바람을 표현할 리 없고, 무척 ‘과학적인’ 합성으로 만들어져 별 안에서만 순환하는 물은 샘솟고 흘러내리고 스며드는 지구와 그것과 비슷하긴 했지만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 밑에 깔린 흙 역시 벌레 한 마리 없이 매끈하기 그지없다. 결과적으로 이제르론은 인간을 위한 무해한 환경을 완벽하게 구현한 우주 유일의 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잘 쉬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그 위에서 난데없이 텀블링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상한 종족인지라, 이 우주 최후의 요람과도 같은 곳에서 무척 이상행동을 보이곤 하는데, 첫 번째는 유례없이 참혹한 전쟁을 자초하여 대규모 자살극을 벌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지나치게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때를 37세기 새벽, 하나의 전염병이 이제르론을 휩쓸고 있었다. 그 병명은...

 “향수병?”

 믿기지 않는다는듯 되묻는 그의 눈밑은 꺼멓게 그늘이 졌다. 기가 막힌 이야기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유서를 훑어보며 카젤느는 눈가를 꼼꼼하게 짚어 눌렀다. 전투가 없는 한 이제르론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만년 전쟁상태에 놓인 알렉스 카젤느, 이제르론 요새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유능하고도 불쌍한 행정가인 그였다. 그는 전투가 있든 없든 제 시간에 나와서 언제나 일어날법한 요새 안팎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 덕분에 요새는 특별히 낙후된 곳 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시설 정비, 예산안 작성 및 집행, 인력 관리, 각종 행정적 교섭 등 그가 안 끼는 곳은 손에 꼽혔다. 가령 제국군과의 교전이라든가.

 물론 그가 모든 일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가령 병사들의 휴가 일정 같은 것은 각 부처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대규모 휴가 신청이 올라온 경우 요새 살림을 총괄하는 입장인 그에게 보고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르론은 현재 정상태가 아니었다. 완벽한 방역 덕택에 교전을 하지 않는 이상 의료팀이 놀고먹는 이 인공행성에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한 것이다. 카젤느는 병명을 듣는 순간 차라리 페스트나 감기 같은 병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이야 환자를 격리하고 약을 처방하고 며칠 쉬게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마음의 병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각 부처에서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투서를 받아든 그는 시름에 잠겼다. 증상은 대충 이랬다. 무기력, 의욕 상실, 발작적인 우울증과 조울증. 사람에 따라서는 두통이나 소화불량을 호소하기도 하고, 고향의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어하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정의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말은 즉 누군가의 정서를 자기 것으로 아주 빨리 취한다는 것이다.

 직접 그 문제를 들고 카젤느를 찾은 프레데리카의 얼굴은 평소보다 어두워 보였다. 카젤느는 순간 믿기지 않는 이 휴가 신청 사유보다 그가 더 신경 쓰였다. 이 요새의 실질적인 책임자를 묻는다면 첫째가라면 서러울 카젤느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비전투분야의 경우에만 해당되었다. 문무양면으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프레데리카가 제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말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자리를 권했다. 놀란 나머지 숙녀를 너무 오래 세워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래서야 양 웬리, 늘 그가 여자에 대한 감각이 전무하다고 면박을 주던 후배 녀석과 뭐가 다르겠는가.

 “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하이네센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프레데리카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식음을 전폐한 사람들을 두고 ‘어쩔 수 없다, 견뎌라’라고 말해야 한다면? 이 군사시설의 내일이 너무나 걱정되는 조처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말을 다 들어줄 수도 없었다. 하이네센까지 한 달이 걸린다. 가장 가까운 엘 파실 성계로 보내는 것도 만만찮은 모험이 될 것이다.

 “일단 발병자 수를 추산중에 있습니다. 초기에 발견한 게 다행이에요...라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군요.”

 프레데리카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딱딱했다. 카젤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이런 건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접촉을 피하고 최대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실없는 농담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카젤느는 프레데리카를 배웅했다. 앞으로 골치 아파지겠다고 생각하면서.

 

 며칠이 지나, 카젤느는 정말 골치가 아파졌다.

 선배, 괜찮아요? 아주 피골이 상접했네. 잘 먹고 있어요? 형수님 요리실력이면 이제르론 제일 아닙니까. 아 정말 배부른 소리를 다 합니다. 하이네센 사관학교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파는 피시 앤 칩스가 먹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드디어 샤를로트 필립스의 남동생이 생기는 겁니까? 내가 그놈 대부 하지요. 아주 끝내주는 혁명 전사로 키워 드리지.

 “꺼져...”

 아텐보로는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해서는 상소리 대신 고도로 세련되고 상대로 하여금 이마와 자신의 발꿈치를 만나고 싶게 만드는 어휘를 구사하는 선배가 고작 한다는 말이 ‘부디 내 집에서 나가주렴, 부탁이야’ 뿐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정말 큰일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 없이 이제르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 행정이라고는 모르는 무식한 군인놈들을 데리고 예산을 집행하다가는 제국군에게 토르 하머를 떼어 팔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다. 무시무시한 미래를 내다보던 혁명가는, 모든 혁명가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하던 일을 계획했다.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하여 자신의 미래를 구하는 일이었다. 카젤느의 집을 나선 아텐보로는 이제르론에서 가장 향수병과 거리가 먼 집단으로 방향을 돌렸다.

 깐죽대던 후배를 보낸 카젤느는 곧 후회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온 몸이 으슬으슬 거렸고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분명 침대에 잘 누워 있건만 마치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에 내던져진 것 같은 허무함이 엄습했다. 이 감각은 아내가 걱정스럽게 손을 잡아도, 사랑스러운 딸들이 안겨와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감각.

 이건 독이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어졌다. 카젤느는 처음으로 요새의 행정을 잊었다. 한시바삐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땅에 발붙이고 싶었다. 바람을 맞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어...”

 어디로? 혼자 남은 카젤느는 눈물을 삼켰다.

 

 후배가 돌아가고, 두 번째 문병자가 온 것은 그로부터 3일 뒤였다.

 “가관이군.”

 카젤느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는 것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안간힘을 써서 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른 그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요새는?”

 “다행히 아직 살아 있군요.”

 “비꼬지 말고. 마지막으로 본 보고서가 민간 거주지 대규모 누수 건이었어. 이 행성에서 수해가 일어나는 것만큼 웃긴 일은 없지. 어떻게 됐어?”

 “뭐, 고향을 못 잊어 빌빌대는 행정관보다 더 웃긴 일이 있을까.”

 불손한 미소를 보며 카젤느는 질문하기를 포기했다. 이 남자를 고문한다 해도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간지럽지도 않다고 웃을 게 뻔하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헤드에 기대앉은 카젤느는 곧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부담스럽게 잘생긴 얼굴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다. 난생 처음 겪는 동성의 접근에 놀란 카젤느는 자신을 엄습한 우울감을 오랜만에 잊고 얼른 목을 뒤로 뺐다.

 “뭐 하는 거야.”

 “잠깐이면 됩니다. 착하지.”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손이 다가오자 카젤느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몸뚱이가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는 이제르론 최고의 휴머노이드 살상무기였다. 근육 하나 손톱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는 그의 완벽한 육체가 그것을 증거했다. 게다가 목소리는 쓸데없이 달콤했다. 이래서 여자들이 이 사람한테 껌벅 죽는 건가. 이성의 관심이라고는 지금의 아내가 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했다. 이런 몸을 가지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기는 글렀지.

 “잠깐만 편하게 쉬고 있으면 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식욕부진과 무기력,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젤느는 무지막지한 손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카젤느는 드디어 자신의 고명한 마술사 후배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녹음이 우거진 숲이 보였다. 나뭇잎이 바람을 따라 마치 빗소리와 같은 소리를 냈다. 그 바람은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와 카젤느의 뺨을 간질였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제르론에는 이정도의 대규모 숲도 없는데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양?”

 마술, 기적, 믿기지 않는 일. 이런 것들의 대명사를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문득 너무나 오랜만에 입에 담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선배. 깼어요?”

 하지만 커튼 너머로 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본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더 하겠는가.

 “이게 무슨. 아니, 너는.”

 “어때요? 아텐보로 녀석이 너무 우는 소리를 하니까...억지로 없는 예산 쥐어짜서 해봤어요. 좀 기분이 나아졌어요?”

 “뭐?”

 “하이네센 최고의 휴양지! 세인트루이스 산림 리조트! ...기억 안 나요?”

 기억난다. 바캉스 시즌에도 기숙사에 붙어 있는 양을 데리고 억지로 떠난 여행지였다.

 “낚시하다 잠든 녀석을 물에서 건진 기억은 나지.”

 “음...”

 그런 일이 있었던가...중얼대며 둘러대던 검은머리의 후배는 침대 옆의 사이드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카젤느가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싸구려 포장마차의 포장지에 싸여 있는 핫도그가 있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그는 갑자기 빵 사이에 끼어 있는 소시지의 반드르르한 기름기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핫도그는 금세 손 안에서 사라졌다.

 “천천히 먹어요. 탈 날라.”

 “시끄러. 도대체, 이게, 무슨 일.”

 “아까 말했잖아요. 하이네센 최고의...”

 “헛소리는 그만 하고.”

 다소 기력을 회복한 카젤느는 사령관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침대에서 나와 옷걸이에 걸려 있는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살이 빠지긴 했는지 허리가 좀 남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방 안을 찬찬히 돌아보더니 방문을 열고 현관을 나섰다. 발 아래에 깔린 부드러운 흙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차였다. 아까부터 산들바람이 불었고, 살짝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카젤느는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다가 마당에 깔린 풀을 아무렇게나 뽑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보고 있는 후배를 돌아보았다.

 “벌레는 안전상의 이유로...미안하게 됐어요.”

 허... 카젤느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르론과는 다른 색깔과 크기의 광원이 그를 비췄다.

 “돈이 썩어나냐.”

 “선배...”

 “나중에 쳐들어올 제국군에 읍소하려고? 토르 하머 발사 비용이 1회분 모자르니 잠시 대기해 주시길 간청하옵니다~ 응?!”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네요. 볼멘소리로 중얼대며 쩔쩔매는 후배를 보며 카젤느는 양 손을 허리에 대고 허탈하게 웃었다. 대체 이게 얼마만의 웃음인가.

 그는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을 지녔지만 그 외 다른 것(가령 동의 없이 예산을 집행한 건에 대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실무자의 분노를 받아내는 일)에는 재능이 전무한 사령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간인 거주지 누수 건은 어떻게 됐지?”

 후배는 싱긋 웃으며 시원해 보이는 그늘에 설치된 벤치를 가리켰다. 벤치와 연결된 테이블에는 익숙한 태블릿과 그가 그리워 죽을뻔한 핫도그가 쌓여 있었다.

 

 기술 발전이란 덧없는 것이다. 하지만 감동적이다.

 화면 너머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도 아텐보로는 뒤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고대 문명의 어떤 효자는 회초리를 맞으며 어머니의 기력을 가늠하고 울고 웃었다 하던가. 딱히 효자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알렉스 카젤느가 기력을 되찾자 눈에 띄게 좋아지는 요새의 행정을 체감하며 아텐보로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사실 카젤느가 없으면 그 다음으로 행정 업무에 노출되는 실무자는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보고서와 행정서류에 압사할 것 같았던 아텐보로는 없던 향수병이라도 만들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좋았어! 다음은 어디로 갈까?”

 “어, 예전에 암릿처 회전 직후 스키장에 간 적이 있어요. 중장님 가족은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느라 아주 잠깐이었지만...”

 불순한 아텐보로와 달리, 아주 순수하게 카젤느의 회복을 기뻐하던 율리안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어이, 눈을 내리는 기술은 없어? 젠장, 역시 어렵겠지.”

 “보이게 하는 것 뿐이라면, 그 블럭의 온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음...그래, 한번 시도해 볼 일이야. 자, 요새의 사활이 걸린 일이다. 빠르게 움직이라고!”

 급조된 연구실에 다음 여행지를 의뢰한 아텐보로는 모처럼 신이 났다. 화면 밖 카젤느는 눈에 띄게 건강해 보였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함께 보낼까 했지만, 그랬다간 이곳이 요새라는 감각을 깨울 위험이 있다며 프레데리카가 반대했다.

 ‘사람은 가끔 혼자 있을 때도 필요하지요. 아무리 사랑해도 늘 같이 있을 수는 없어요.’

뼈 있는 말에 (자칭) ‘알렉스 카젤느=이제르론 멘탈 회복 위원회 위원장’ 더스티 아텐보로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보라! 3일만에 이제르론이 눈에 띄게 건강해지고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숫자를 세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우수한 작전 성과를 보고하며 희희낙락한 아텐보로의 앞에서 향수병과 가장 거리가 먼 집단, 로젠리터의 현 연대장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침 아텐보로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바람에(“중장님! 업무시간에 술 마시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율리안 있음) 다른 사람의 귀에 닿지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은데...”

 카젤느는 구식 신사답게, 얼굴이 잘 나오도록 카메라를 조절하는 법을 몰랐기에 늘 통신 구도가 똑같았다. 화면에서 약간 왼쪽에 자신을 두고 정면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가끔, 아주 가끔 자신의 오른쪽 곁을 돌아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상테레제 묘지공원이네요.”

 “망할...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안 거야?”

 눈에 보이는 것은 공교롭게도 카젤느 가(家)의 가족묘였다. 늦은 성묘라도 하라는 것인가. 실감나는 홀로그램 기술에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준비되어 있던)꽃을 묘석 앞에 놓았다.

 “어이, 네 부모님도 이 묘지에 있지?”‘

 “그렇죠. 하지만 선배를 위한 여행이니까요.”

 “그래, 아주 참 좋은 여행이다.”

 성묘를 마친 카젤느는 장소에 상관없이 늘 똑같은 모습으로 준비된 벤치에 앉았다. 그럼 업무가 시작되었다. 화면 너머에 있는 녀석들은 아무리 캐물어도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고집스럽게 ‘하이네센 명승지 여행 보내 드립니다~’ 라고 말하며 웃을 뿐이었다. 그는 앉아서 예전에 갔던 휴양지, 혹은 말로만 듣던 명승지를 여행했다. 숲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으며, 극지의 오로라가 있었다. 이 여행에는 이제르론에서는 겪을 수 없는 바람과 날씨의 변화가 함께 했다. 이 날씨와 비주얼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 지 오래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으니까. 다만 어느 원수가 산더미 같은 업무거리와 함께 휴가를 보낸단 말인가.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카젤느는 이상하게 자신의 업무 효율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비교하자면 요 1년 동안 이렇게 몸이 가뿐했던 적이 없다.

 양은 카젤느의 맞은편이나 옆에 앉아 빈둥대며 하루를 보냈다. 저 녀석은 완전히 휴가 왔군. 혀를 차며 카젤느는 가끔 요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에게 알려줬다. 인구가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어떤 시설이 맛이 갔는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누가 죽었는지...누가 떠났는지. 영원한 이제르론의 사령관은 그 말을 듣는둥 마는둥 했다. 하지만 가끔 통상 행정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카젤느에게 도움을 주었다. 예전부터 이런 녀석이었다. 발은 땅에 붙어 있지 않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가끔 내키지 않는 방식으로 손을 뻗어 뭔가를 조금씩 바꾸고, 그러다 훌쩍 떠나고.

 반면 카제느는 날 때부터 발이 땅에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우주군을 운영하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것에는 은근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지상인. 그런 카젤느도 가끔 먼 길을 떠나곤 했다.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놈을 붙잡아 두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그를 따라 누구도 시키지 않은 모험을 하기도 했다.

 묘지라. 카젤느는 이 기획이 슬슬 막바지라고 느꼈다. 한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었나. 이상하게도 인간은 몇 가지 감각이 충족되면 언제 우울했냐는듯 기분을 바꿔 활력을 되찾기도 한다. 카젤느는 일말의 분함을 느끼며 이 기획이 훌륭하다고 인정했다. 그를 사로잡은 사무친 그리움이 어느새 성큼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날분의 일을 끝마친 카젤느는 일거리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지 너머로 아름다운 황혼이 연출되었다. 정말, 자연스러운 것 빼고는 모두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요새였다. 카젤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메시지를 아텐보로에게 보냈다. 그리고 후배를 불렀다.

 “양.”

 카젤느와 함께 석양을 보던 양이 대답했다.

 “언젠가 함께 가자.”

 어디를요?

 “어디긴. 나와, 네 녀석의 고향이지.”

 제 집은 이제르론인데요.

 “아니, 네 집은 말이야...지금 완전히 먼지구덩이일 거다. 책에는 좀이 슬어 있을 거고, 어쩌면 완전히 약탈당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 거기가 네 고향이야.”

거기까지 말한 카젤느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묘지 앞의 집이라니, 너무 조잡하잖아!). 아마 내일이면 무례한 장미의 기사단, 그리워할 고향 따위는 애초에 버린 자들이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다. 그들과 한판 하려면 푹 쉬어야 한다.

 

 이제르론 공화정부 혁명군 아텐보로 중장 기획이 기획하고 이제르론 공화정부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 주석이 승인했으며 이제르론 공화정부 혁명군 군사국장이 몸소 임상실험에 참여하여 대단한 성과를 나타낸 여행 치료 프로그램은 곧 향수병을 호소하는 병사들에게 점차적으로 보급되었다. 고향의 풍광과 이제르론과 다른 냄새나 바람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크게 완화되었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주로 환자 혼자 ‘떠나는’ 이 프로그램에서, 가끔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동행인이 있는 ‘것 같은’ 현상이 관측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기에 사실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우주력 801년 8월, 이제르론 요새의 반환을 앞둔 알렉스 카젤느는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그의 영원한 사령관과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을.

은하영웅전설 2020 여행 합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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