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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mf1HzQXtvww11Oj)- 산장에서의 사흘

그 곳 하이네센의 한적한 산골에 위치한 산장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운취를 가지고 있었다.

 

간신히 복잡한 정치계산과 타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양웬리는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침대로 직행해서...... 막 신혼여행지에 도착한 부부다운 모습을 연출하기는커녕, 몇 십 시간 진행된 전투를 마친 군인들의 모습으로 바로 잠이 들었다.

 

양은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이 들었고, 그보다 젊은 키르히아이스는 산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불쾌한 만남들을 떠올리다 눈이 감겼다.

 

-

 

‘결혼 축하하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중장.’

 

키르히아이스는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잘 다듬어진 매끄럽고 부드럽다는 인상마저 주는 손의 주인은 키르히아이스의 손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욥 트뤼니히트 최고 평의회의장은 인내심이 강하고 끈질긴 남자였다. 결국 내키지 않은 손길로 힘없이 트뤼니히트의 손을 잡고 성의없이 몇 번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산장으로 출발하기 직전의 불쾌한 만남이었다. 빨리 출발하기 위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감사인사를 한 후 몸을 돌리는 키르히아이스에게 트뤼니히트의 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동맹군복이 더 어울리는 듯 하군요. 일주일 뒤에 기대하지.’

 

저 말을 들으니 왜 아내인 양웬리가 그를 혐오하고 경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트뤼니히트의 의도는 자신이 애써 잊고 있었던 한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얼마 전까지 누가 키르히아이스가 자신의 친우이자 주군인 로엔그람을 등지고 동맹으로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제국에서나 동맹에서나 그런 이야기 하는 자는 바로 정신병동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실제로 키르히아이스와 그의 부관인 베르겐그륀이 동맹에 망명했다는 소식이 제국에 전해졌을 때(그 사실을 전하는 오퍼레이터도 거짓정보로 취급했었다) 제국군 장성들 중 누구도 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들의 상식에 완전히 어긋나는 뉴스였기에.

 

제일 먼저 정보를 확인해 그 뉴스가 사실임을 라인하르트에게 보고한 자는 군무상서 오베르슈타인이었다. 오베르슈타인의 보고를 받고도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부정하다가 키르히아이스의 배반을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정식으로 동맹군에 입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는......

 

키르히아이스의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 자신은 양웬리와 결혼하였고, 오딘이 아닌 하이네센에 있으며 신혼여행이 끝나면 동맹군 중장으로 임명되어 이제르론에 아내와 함께 근무할 터였다. 앞으로는 제국에서 보낸 날보다 기나긴 날들을 제국군인이 아닌 동맹인으로서 살아가야한다. 옆에서 잠든 양의 손을 잡으며 키르히아이스의 의식은 서서히 어둠에 잠겼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잠으로 날린 신혼부부에 닥친 당면과제는 뭘 먹어야 하느냐였다. 밖으로 나가 사 먹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양 뿐만 아니라 키르히아이스 자신도 얼굴이 많이 알려진 터라, 남들 주목 속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결국 부부는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굉장하군요. 카젤느 소장은. 삼일 머문다고 했는데 딱 그 정도 필요한 식료품들을 구비하다니.”

 

“....사실 선배가 없으면 이제르론이 돌아가지 않아요. 부임할 때 어떻게든 카젤느 선배를 데려오려고 안간힘을 썼죠. 좌천이 빨리 끝나서 다행이었지.”

 

무심히 말하는 양의 말에 키르히아이스는 멈칫했다. 카젤느 같이 유능한 장성이 좌천될 만한 사건은 딱 하나였다. 양과 적으로 조우한 암리처 전투. 동맹군의 괴멸적 패배로 끝난 전투는 아이러니하게도 키르히아이스 자신에게는 제대로 된 함대전을 치러 제국군 제독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투였다. 자신의 영광이 아내에게는 씁쓸한 패배였다는 걸 꺠닫는 동시에 한 번 더 사소한 것에서 양과 키르히아이스 자신의 거리를 느꼈다.

 

침울해진 남편의 감정을 느꼈는지 양은 그녀답지 않게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며 요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양 답지 않은 모습에 키르히아이스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양을 따라 같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 그냥 시톨레 전 원수 말대로 산장이 아닌 호텔에서 보내야 했나. 그럼 이런 난장판은 마주하지 않았겠지.’

 

결론적으로 양웬리의 요리는 장렬하게 실패했다. 오븐이 터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시 반나절을 엉망이 된 부엌을 치우는데 쓰니 기운이 다 빠졌다. 지친 키르히아이스가 바닥에 주저앉자 쓰레기봉지를 정리하고 있던 양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전에는 어떻게 식사를 해결했어요?”

 

기가 찬 키르히아이스의 질문에 양이 풀이 죽어 대답했다.

 

“율리안이 오기 전에는 사 먹거나 샌드위치로.....”

 

“기운내요. 웬리. 앞으로는 내가 요리 할게요.”

 

키르히아이스의 위로에도 양이 계속 기운 없어 보이자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키르히아이스의 제안에 조금 기운을 차린 양이 좀 걸어가면 강과 연결된 호숫가가 있으니 거기서 낚시도 하자고 말했고, 아예 저녁은 물고기를 잡아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금새 기운을 차리는 아내를 보고 키르히아이스는 웃으며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

 

그때는 뮈젤가 남매를 만나기 몇 달 전이었다. 일에 치여 살던 아버지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갔었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 키르히아이스는 과하게 들떴었고 자신이 낚싯대를 잡아 고기를 건져 올리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본인의 낚싯대는 물론 아버지의 낚싯대로 강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물살에 유유히 떠내려가는 낚싯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다,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도 강에 빠뜨렸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실수로 휴가를 망쳤다는 생각에 키르히아이스가 울고 말자, 아버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괜찮다. 지크, 다음에는 조심하면 돼.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하지만, 낚싯대가,’

 

낚시는 꽃을 가꾸는 것만큼 아버지의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그래서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가격대가 있는 낚싯대였다. 그걸 두 개나 잃어버렸으니 키르히아이스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가 강으로 뛰어들지 않은 건 그들이 낚시하고 있던 강은 생각보다 유속이 빠른 곳이 많아 어린 그에게는 매우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애타게 강을 바라보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네가 만약 낚싯대 때문에 강에 뛰어들었다면 그게 큰일이었다. 다행히 넌 강의 위험함을 잘 알고 있구나. 지크 앞으로도 네가 강의 위험함을 보듯, 표면에 자리잡은 것만 봐선 안된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네가 위험해지지 않는 게 나에게 중요하단다.’

 

아버지의 따스한 위로에 키르히아이스는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눈물을 닦았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자신에게 사물의 겉부분만 보지 말고 정말 중요한 가려진 부분을 봐야한다고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자리에서 키르히아이스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랑과 가르침은 너무 커서 자신이 라인하르트와 척을 지고 동맹으로 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양웬리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게 한 것도.

 

양웬리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닮은 전쟁의 천재였으나, 결정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전쟁을 싫어하지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이 명장은 운명의 여신의 사랑을 받은 것 같았으나 가장 잔인하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양웬리의 가장 큰 비극은 그녀가 동맹의 위정자들의 명령을 받는 위치였고 그 위정자들은 트뤼니히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해서 미친 짓거리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의무와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시민들을 위험에서 보호했으며 자신의 국가에 충성을 다했다. 양웬리는 라인하르트처럼 권력을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절대 과대평가하는 법이 없었고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지 않았다. 만약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그게 학살과 같은 거대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면 기꺼이 그 방법을 포기하였다.

 

그런 그녀의 고지식한 양심과 신념은 베스터란트 사건 이후 양심과 신념에 따라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키르히아이스를 사로잡았다. 양웬리와의 재회 이후 키르히아이스의 삶에서 양웬리는 거대한 이정표이자 상징이 되었다.

 

“모래면 다시 이제르론으로 돌아가는군요. 이제르론에서 가고 싶은 장소가 있나요?”

 

풍성한 낚시 결과에 기뻐하던 양이 키르히아이스에게 물었다. 이제르론은 지금 동맹군의 주둔지이지만, 그 전에는 제국군의 별이었다.

 

“아뇨, 웬리. 가고 싶은 곳은 없어요. 그 전에 근무했던 곳이어서요. 그나저나 여행도 이렇게 끝이 나네요.”

 

“그럼, 지크프리트. 이제르론으로 돌아가면 내가 소개해 줄게요. 제국군 시절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 장소들도 있을 거에요. 비교하며 둘러보는 것도 재밌을 거에요.”

 

기나긴 여행 끝에 만난 자신의 반려가 웃고 있었다.

 

“그래요. 달라진 모습 보는 것도 재밌을거에요.”

 

신혼여행은 곧 끝이 나지만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지만 동맹으로의 여행처럼 절망적이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은하영웅전설 2020 여행 합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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